눕기의 기술
🔖 "침대에서 할 수 없는 일은 가치 없는 일이다." - 그루초 막스
🔖 작가 A. L.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잠은 작은 죽음이라고. 그러나 우리를 저지하고 고통을 가하며 죽이는 것은 오히려 깨어남이다."
🔖 치명적 가족성 불면: 전혀 잠에 들지 못하다가 죽음에 이름
🔖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는 1859년 소설 <오블로모프>에서 주인공 오블로모프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누워 있기만 하는 인간상으로 형상화했다. "집에 있을 때면(그는 거의 언제나 집에 있었다), 그는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고 계속 같은 방에서 지냈다. 그 방은 그에게 침실이자 서재이자 응접실이었다." 페르시아 실크로 짠, 품이 넉넉한 동방의 케이프를 휘감은 30대 초반의 귀족 오블로모프는 침대나 안락의자에 누워 백일몽에 빠졌다. 삶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푸석푸석하고 부은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나이 탓이라기보다는 운동 부족이거나 신선한 공기 부족이거나, 또는 아마도 이 두 가지 모두가 부족한 탓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나이트가운으로 감싼 소시지와 비슷한 모습이 되어갔다. 그를 조금이나마 생동감 있는 삶으로 이끌려는 손님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때 강렬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경험조차 그의 생활 패턴을 그다지 변화시키지 못했다. 서술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병자나 잠이 부족한 사람처럼 필요성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피곤하고 지친 사람처럼 우연하게 일어나는 사건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그의 정상적인 상태였다."
🔖 지젝은 그냥 누운 모습을 공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속옷 차림의 도발적인 모습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진을 보여줄 뿐 아니라, 발가벗은 채 침대에 누워 철학을 한다. 지젝은 우리 삶의 수직/수평 비율이 한참 빗나갔다고 느끼는 신세대 철학자의 대표 격이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자신의 일기 <선들과 날들>에서 독자들에게 그냥 "침대에 머물러 있으라"라고 권한다. "눈이 떠졌을 때 해가 이미 중천에 있다고 곧바로 비바 악티바(viva activa, 행동하는 삶)에 돌입할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바야흐로 신 수평 시대(New Horizontal)가 도래한 듯한 느낌이 든다. 왜 이러한 흐름이 생겨났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장황한 인식이나 싸구려 신비주의 같은 것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성과주의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대한 십분 이해할 수 있는 반발이다. 번아웃한 탈물질주의 사회는 현재 숙고를 거듭하고 있으며 수평 자세에 대한 재평가가 한창이다.